퇴근길 10분, 북성포구 — 같은 노을을 두 카메라로 담다(초안)

2026년 6월 15일 촬영 · 최영준 · 찍은 곳: 북성포구
쓴 장비: 소니 α7 V, 후지필름 X100VI

매일 지나치던 곳

북성포구는 회사에서 가까워 퇴근길에 늘 지나가던 곳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서서 바라본 적은 없었어요. 그냥 "바다 냄새 나는 길"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죠.

이날은 처음으로 카메라 두 대를 챙겨 퇴근했습니다. 가방에는 A7M5와 24-70GM II, 목에는 X100VI. 둘을 합치면 1kg을 훌쩍 넘는 무게라 평소라면 엄두를 못 냈겠지만, 회사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니까 해볼 만했습니다.

물이 빠진 포구는 갯벌이 되어 있었고, 어선들은 진흙 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쉬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인천의 공장들과 굴뚝이 늘어서 있었고요. 처음엔 어색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해가 기울면서 하늘이 주황색에서 보라색으로 물들자 그 모든 게 하나의 풍경으로 묶이기 시작했습니다.

갯벌 위에 기대어 있는 어선
갯벌 위에 기대어 있는 어선

같은 노을, 다른 결과물

이날 가장 재미있었던 건 같은 장면을 두 카메라로 번갈아 찍어본 일이었습니다.

X100VI 은 기억에 가까운 사진이었어요. X100VI로 찍은 사진은 필름 그레인이 자연스럽게 얹혀서, 노을이 조금 더 따뜻하고 거칠게 남았습니다. 디테일이 완벽하게 선명하진 않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그날 그 자리의 공기"가 느껴지는 사진이 됐어요. 사진을 본다기보다 기억을 꺼내보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X100VI 으로 촬영한 북성포구 갯벌과 폐공장 (35mm)
X100VI 으로 촬영한 북성포구 갯벌과 폐공장 (35mm)
X100VI 으로 촬영한 북성포구 갯벌과 폐공장 (70mm 크롭줌)
X100VI 으로 촬영한 북성포구 갯벌과 폐공장 (70mm 크롭줌)
X100VI 으로 촬영한 갯벌에 기댄 어선
X100VI 으로 촬영한 갯벌에 기댄 어선

A7M5 + 24-70GM II 는 풍경 그대로의 사진이었어요.

A7M5로 찍은 사진은 정반대였습니다. 해상도가 쨍하고 대비가 높아서, 하늘의 색 층과 갯벌의 질감, 멀리 있는 공장 구조물까지 또렷하게 담겼어요. 이쪽은 기억보다는 "기록"에 가까운 사진입니다.

A7M5로 찍은 노을
A7M5로 찍은 노을
A7M5로 찍은 갯벌
A7M5로 찍은 갯벌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하긴 어려웠습니다.

스펙상으로는 풀프레임과 GM 렌즈 조합이 앞서지만, 사진을 다시 꺼내 보게 되는 건 의외로 X100VI 쪽이었거든요. 결국 스펙은 "얼마나 잘 찍히느냐"를 말해주고, 어떤 사진이 마음에 남는지는 찍는 사람이 정하는 것 같습니다.

해가 다 지고 나서야 카메라를 내려놓았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멀리 여행을 가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매일 무심코 지나치던 퇴근길에 이런 노을이 있었다는 게 조금은 놀라웠어요. 바뀐 건 풍경이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그 앞에 멈춰 섰다는 것 하나뿐이었습니다.

카메라를 산다는 건 어쩌면 비싼 장비를 갖는 일이 아니라, 평소엔 지나치던 것들 앞에서 멈출 이유가 하나 생기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