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지나치던 곳
북성포구는 회사에서 가까워 퇴근길에 늘 지나가던 곳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서서 바라본 적은 없었어요. 그냥 "바다 냄새 나는 길"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죠.
이날은 처음으로 카메라 두 대를 챙겨 퇴근했습니다. 가방에는 A7M5와 24-70GM II, 목에는 X100VI. 둘을 합치면 1kg을 훌쩍 넘는 무게라 평소라면 엄두를 못 냈겠지만, 회사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니까 해볼 만했습니다.
물이 빠진 포구는 갯벌이 되어 있었고, 어선들은 진흙 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쉬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인천의 공장들과 굴뚝이 늘어서 있었고요. 처음엔 어색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해가 기울면서 하늘이 주황색에서 보라색으로 물들자 그 모든 게 하나의 풍경으로 묶이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노을, 다른 결과물
이날 가장 재미있었던 건 같은 장면을 두 카메라로 번갈아 찍어본 일이었습니다.
X100VI 은 기억에 가까운 사진이었어요. X100VI로 찍은 사진은 필름 그레인이 자연스럽게 얹혀서, 노을이 조금 더 따뜻하고 거칠게 남았습니다. 디테일이 완벽하게 선명하진 않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그날 그 자리의 공기"가 느껴지는 사진이 됐어요. 사진을 본다기보다 기억을 꺼내보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A7M5 + 24-70GM II 는 풍경 그대로의 사진이었어요.
A7M5로 찍은 사진은 정반대였습니다. 해상도가 쨍하고 대비가 높아서, 하늘의 색 층과 갯벌의 질감, 멀리 있는 공장 구조물까지 또렷하게 담겼어요. 이쪽은 기억보다는 "기록"에 가까운 사진입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하긴 어려웠습니다.
스펙상으로는 풀프레임과 GM 렌즈 조합이 앞서지만, 사진을 다시 꺼내 보게 되는 건 의외로 X100VI 쪽이었거든요. 결국 스펙은 "얼마나 잘 찍히느냐"를 말해주고, 어떤 사진이 마음에 남는지는 찍는 사람이 정하는 것 같습니다.
해가 다 지고 나서야 카메라를 내려놓았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멀리 여행을 가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매일 무심코 지나치던 퇴근길에 이런 노을이 있었다는 게 조금은 놀라웠어요. 바뀐 건 풍경이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그 앞에 멈춰 섰다는 것 하나뿐이었습니다.
카메라를 산다는 건 어쩌면 비싼 장비를 갖는 일이 아니라, 평소엔 지나치던 것들 앞에서 멈출 이유가 하나 생기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